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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사람의 탕자임을 깨닫게 될 때/매일 미사/사순 2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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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큰빛 댓글 1건 조회 1,380회 작성일 2015-03-08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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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 박물관에는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의 그림이 있다.

거기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다.

누더기 옷, 다 해진 신발과 상처 난 발바닥은

그가 집을 떠나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는지를 보여 준다.

그의 머리는 막 태어난 아이의 모습처럼 삭발인데,

이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보여 준단다.

동생을 안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큰아들은 어둡게만 처리되어 있다.

그 얼굴에는 시샘과 질투, 그리고 분노가 가득 찼다.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한 것일 게다.


아들을 안고 있는 아버지의 두 손은 서로 다르다.

왼손은 크고 강인한 손 모양으로

세상의 어떤 위험에서도 아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아버지의 손이다.

오른손은 작고 부드러운 손으로

아버지가 다 품지 못한 사랑을 섬세하게 품어 주는 어머니의 손 모양이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다 늙어 버린 아버지의 얼굴 모습이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안도감으로 자비롭고 평온하다.

그러나 한쪽 눈은 집 나간 아들을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눈물로 지샌 거의 실명 상태다.

그렇지만 눈가에는 분노가 아닌 사랑이 가득하다.


복음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흔히 돌아온 탕자의 비유란다.

죄를 지은 작은아들을 주인공으로 보는 게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를 큰아들의 비유라고도 한다.

이는 죄를 지은 작은아들보다 줄곧 아버지를 종처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은 큰아들이 주인공처럼 여겨지기에.

그리고 방탕한 삶을 살지 않은 큰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가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더 중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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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가 뭐래도 진정한 이는 자비로운 아버지일 게다.

작은아들과 큰아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 아들들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대하는 아버지라는 것이다.

작은아들이 비록 큰 죄를 지었음에도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기꺼이 받아들인 아버지,

또한 큰아들이 화가 났을 때에도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며

자신과 아들들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인 것으로 대하는

아버지의 그 사랑이 가장 큰 메시지로 여겨지니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때로는 작은아들처럼 때로는 큰아들마냥 산다.

그러나 우리가 나아갈 길은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는 것이리라.

이것이 우리를 일깨우는 가르침이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을 나간 뒤로

하루도 그 자식을 잊지 못하고 자식이 떠난 그 길을 끝없이 바라보았으리라.

집 나간 아들을 향한 그리움은 눈물이 되어, 그 흘린 눈물로 눈은 짓물렀으리라.

 


저 멀리 길모퉁이를 돌다온 몰골이 달라진 아들을 안고

기쁨에 겨워 춤추는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부족함과 잘못을 다 아시면서도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이시고, 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지금도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다리신다.

 


이 작은아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으며,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속 좁은 큰아들의 모습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여기에 자유로울 이는 아무도 없을 게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늘 우리를 살리고 일으켜 세우신다.

그럼에도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너그럽지 못했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비판보다는 이해로 가야 하리라.

이것이 그분의 마음, 곧 사랑과 생명의 마음이기에.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충실하게 살아온 큰아들보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작은아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넘치는 그분의 사랑이 그를 깨끗하게 씻어 주기 때문일 게다.

현대를 보내는 사순 시기는 이런 참회로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자비를 구해야 하는 또 한 사람의 탕자임을 깨닫게 될 때에

비로소 하느님의 한없는 그 사랑을 이해하게 될 것이니까 

댓글목록

홍보부님의 댓글

홍보부 작성일 2015-03-14 16:18

은혜로운사순시기에 좋은 묵상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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