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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은총의 성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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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큰빛 댓글 0건 조회 1,323회 작성일 2015-03-3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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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성토요일’까지 한 주간을 말한다.
성주간의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주님 부활을 맞이하도록 이끌어 준다.
교회의 전례에서 성주간은 전례의 정점을 이룬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한다.
미사 전에 성지를 축복하고 행렬을 한다.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조롱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다면 어땠을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도 있는데 왜 너무도 무력하게 수난과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셨을까?
아니 현대를 보내는 오늘 이 시각이라도,
새 교황님이 탄생되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즈음에도 그분의 그 영광스런 변모를 다시 한 번 더 보이신다면?

이를 잘 묵상해 보고자 비유 하나를 들자.
법정에 선 한 살인자가 있다. 최종 선고 직전에 여럿이 이를 바라본다.
첫 번째는 검사일 게다. 그는 살인자의 잘못한 점만을 뚫어지게 본다.
두 번째는 변호사이다. 검사와 대조적으로 살인자의 좋은 면만 직업상으로 한정해 부각시킬 게다.
다음은 판사, 그는 법의 기준만 비교하며 판단하리라.
마지막으로 일반인이다. 이들의 시선은 제삼자 그 이상의 그 이하의 것도 아니다.
그저 호기심과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밖에.

그렇다면 우리 하느님은 이 살인자에 어떤 시선을 가지실까?
그분은 네 부류와는 다른 시선을 지닐게다.
당신의 시선은 마치 살인자의 어머니가 지닌 마음과도 같으리라.
어머니는 자식의 잘못을 알고 있지만, 그걸 따질 틈도 없다.
그녀에게는 자식이 당장 죽지 않는 것만이 중요할 게다.
그 아들이 죽게 된다면, 차라리 자신이 대신 죽고 싶은 심정뿐임에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죄인들의 죽음을 오히려 당신의 죽음으로 택하신 게다. 죽어야 할 죄인들을 살리시고자 그렇게.
죄 많은 이를 진정 용서하시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당신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모든 이의 고통을 안으시고자 못 박히신 채 묵묵히 고통의 죽음을 받아들이신 것이다.

오늘의 우리도 그 옛날의 그 예루살렘 군중과 같을 게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우리이다.
그 몹쓸 군중은 자신의 생각과 이해관계에 맞으면 두 손 들어 예수님을 환호했고,
그러지 않으면 옳고 그름을 떠나 등을 돌렸다.
그 때에 그렇게 예수님은 함께한 제자들과 군중에게 철저히 배반당하셨다.
그래서 홀로 걸으신 십자가의 그 길은 더없는 고독과 괴로움을 안은 길이셨을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도 그 골고타로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따른 그 못난 군중과 무엇이 다르랴?
그들이 지금의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우리도 상대방이 내 뜻과 맞지 않으면 너 언제 봤냐며 등을 돌린다.
내 이익에 걸림돌이 되면 누구나 하루아침에 원수가 된다.
폭력과 죽음의 문화는 내가 관여할 게 아니다.
사회적 약자는 생각조차 하기 귀찮다.
이 모든 게 오늘을 사는 우리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일게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는 그 때의 그 유다가 아니겠지?’라는 마음을 겁 없이 가진다.

사실 살다 보면 누구나 억울함을 체험한다.
실패도 만나 모든 이의 총대도 매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십자가를 홀로 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결코 헛된 게 아닐 수도 있다.
예수님의 수난이 영원한 죽음이 아닌 당당한 부활을 온 천하에 공개했다.
그리고 당신의 영광된 재림도 앞으로 반드시 있을 게라고 분명히 공지된 상태다.
따라서 우리 인생의 이 ‘아픔’도 정녕 의미 없는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게다.
우리의 삶에도 사순 시기에 해당되는 시련기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에게도 의당 그분과 마찬가지로 ‘부활의 체험’이 주어지리라.
이번 주가 그 신비를 묵상하는 때이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고자 예루살렘 입성과 그분의 수난, 죽음을 동시에 기념한다.
당신 자신을 완전히 비워 낮추신 수난과 죽음을 보면서 우리의 어둠의 면도 묵상한다.
그러면서 삶의 깊이를 뜻 깊게 되새기고자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에 우리 자신을 깊게 묻고서는 묵상해 본다.
수없는 그분의 아픔을 배반한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당신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는 은총의 성주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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