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민족의 수난 - 上 -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유다 민족의 수난 - 上 -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현석 댓글 0건 조회 1,268회 작성일 2014-12-12 19:37

본문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 그분의 동족이고 동포였던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오랜 세월에 걸쳐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메시아의 모습이란, 다름아닌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던 막강한 로마제국의 압제를 쓰러뜨리고 자신들을 해방시킬 정치적인 메시아였을 것이다.


마침내 참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유다 지방에 오셨을 때, 유다인들은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것은 그분께서 수없이 행하신, 평범한 인간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을 수많은 기적들은, 그분께서 정녕 자신들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존재 - 즉 자신들이 그토록 애타게 고대하던 '메시아' - 일 것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분을 따랐다. 그들 중에는 정녕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진실되고, 또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이 참으로 올바르고 진리임을 마음 속 깊이 느껴서 따르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단지 그분께서 일으키신 수많은 기적들에 호기심이 생겨서 따르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또 그분 곁에 있으면, 자신도 언젠가 '왕 답게' 호강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분을 따르던 이들 또한 있었을 것이다.


당대 유다의 저명한 율법 학자들과 교사들,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혐오하고 또 미워하였다. 그들의 주관으로는, '메시아' 라고 하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임금의 옷을 입고, 권위가 느껴지는 왕홀을 손에 쥔, 실로 풍채당당한 모습이어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 어디까지나 그들의 시점으로 보기에 - '왠 누더기를 걸친 가난뱅이 청년' 이 나타나, '자신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라고 주장하며, 이해할 수도 없는 해괴한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모습은 그들에게 능히, <하느님을 거스르는 극도로 오만하고 위험스러운 인물> 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10계명과 율법들을 '철저하게 준수' 하고, 또 백성들에게도 그래야만 한다고 사력을 다하여 가르쳐 온 자신들을 향하여, "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는 - 우리의 표현대로라면 '후레자식' 쯤에 해당할 - 원색적이고 독랄한 극언, 비난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 든 것은 결코 율법 학자들과 수석 사제들만이 아니었다. 예수님을 향한 미움과 증오는, 유다의 백성들 사이에서도 스멀대며 서서히 확산되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향하여, '어서 저 무도한 로마의 압제자들을 당신의 그 막강한 권능과 기적의 힘으로 몰아내시고 저희에게 해방을 가져다 주시오.' 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그들은, '원수를 사랑하여라.' 느니,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느니와 같은, 자신들의 염원과 절대적으로 배치되는 그분의 말씀들에 섭섭함과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오신 것이, 뭔가 삿된 목적과 의도가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과 의심을 품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차츰 예수님의 가르침을 피하기 시작하였다. 개중에 몇몇 극단적인 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을 '유다 민족을 멸망시키고 흩어 놓으려는 의도를 지닌 로마의 첩자' 쯤으로 생각한 자들도 틀림없이 있었으리라.


마침내 결정적인 운명의 시간이 왔다.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수석 사제들의 사병(私兵)들에 의하여 체포되신 것이다. 로마의 식민지인 유다 지방을 다스리던 총독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왜소하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번쩍이는 갑주를 걸쳐 입고, 수많은 군사와 수행원을 거느린 위풍당당한 모습의 빌라도와, 때에 절은 누더기와 멍들고 부어오른 얼굴로 쇠사슬에 묶이신 채 홀로 서신 예수님의 모습은, 실로 하늘과 땅보다 심한 격차를 느끼도록 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유다인들은 빌라도에게 '그 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라고, 예수님을 죽일 것을 강력히 주문하였다.


유다 지방을 다스리던,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거의 전혀 거슬리는 대상도, 위협을 느낄만한 대상도 아니었을 것이다. 무릇 식민지에 대한 지배국의 태도는 과거나 현재나 대동소이할 것이다.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지 않고, 자신들의 행보에 방해가 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거스르지 않는 한, 식민지의 백성들에게 극도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애초에 어느 지방이나 국가를 복속시켜 식민지로 삼는 목적 자체가, 그곳의 백성들을 '다 죽여버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곳의 백성들이 '삶' 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면서, 그곳에서 취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유형무형의 자원들을 취득, 수탈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의 총독 빌라도로서는 로마에 대하여 어떠한 정치적, 사상적, 반동적인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는 예수님을 굳이 제거해야만 할 어떠한 이유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총독 관저의 광장에 모인 유다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 유다 민족의 메시아 예수' 라는 생각은 백지보다 더 깨끗하게 지워진 지 오래였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전했던 수많은 말씀들과 복음들은, 그저 '우리들의 하느님을 모독하는 오만하고 죽어 마땅한 발언' 으로 취급되었고, 그분께서 일으키신 수많은 기적들은 그저 사술(邪術)로서 일으킨 장난질쯤으로 여겨졌다. 빌라도는 광장에 모인 유다인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조금이나마 그들로 하여금 이성과 사리에 맞는 판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무고한 이를 살려 볼 생각으로 군중들에게 "다가오는 너희의 유월절에 죄인 한 명을 풀어주는 풍습이 있지 않느냐? 이 자와 살인자 중 누구를 풀어주는 것이 좋겠느냐?" 라고 물었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의 대답은 이구동성으로 '살인자를 풀어주고 사기꾼 나자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였다.


'살인자' 이자 또 다른 '예수' - 예수 바라빠 - 는, 로마의 지배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이던 인물이었다. 오늘날에도 그렇듯,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벌일 수 있는 무장 투쟁이란 것은 기껏해야 게릴라, 요인 암살, 주요 거점 기습 등이 주된 형태이자 동시에 뼈저린 한계일 것이다. 당연히, 그러한 투쟁의 대상이 되는 로마 입장에서는, 그는 '살인자' 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유다 민족이 바라던 '메시아' 의 모습에 단지 조금이나마 더 가까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유다인 군중은 '예수 그리스도' 대신 '예수 바라빠' 를 구하길 원했다. '예수 그리스도' 를 거부하고 '예수 바라빠' 를 선택했고, '예수 그리스도' 를 내치고 '예수 바라빠' 를 받아들인 셈이었다.


기대에 180도 어긋난 유다인들의 반응에, 빌라도는 어떻게든 군중을 진정시키고, 동시에 예수님의 '생명'만이라도 지켜 볼 나름의 자구책으로, 병사들에게 예수님을 채찍질하도록 명령한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쇳덩이와 예리한 갈고리가 달린 채찍으로 그야말로 잔혹함의 극치를 달릴 수준의 매를 맞으신다. 아예 절명, 설사 살아남더라도 평생 불구가 되어 두 번 다시 과거와 같은 활동은 절대로 불가능하게 될 형벌이었다.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채, 다시 빌라도 앞으로 끌려 오신 예수님을 유다인들에게 보여주며, 빌라도는 "이 사람을 보라!" 라고 외친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너희들은 만족하지 않겠느냐?' 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도 했다. 군중은 더욱 큰 목소리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광기가 군중들을 휩쓸었다. 군중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한 때 그들이 '메시아' 로 믿고 고백하던 예수님의 참혹한 죽음이었다. 군중들은 실로,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을 뒤 엎을 수도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광기와 상상을 초월하는 열망으로 하나같이 예수님의 죽음을 바랐다. 급기야 군중들 중 몇몇 성질이 급하고 과격한 이들은, 총독의 안전상의 이유로 바리케이드를 이루고 호위대열을 구성하던 로마의 병사들을 밀치고 당기며 난입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로마 병사들이 저지하면 그들은 더욱 더 광기에 차서 날뛸 뿐이었다. 저지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몰려가 총독 관저를 점령해 버릴 기세였다. 그들을 말로 설득하여 물러가게 하거나, 진정시키기란 불가능했다.


빌라도는, 광기로 가득찬 유다인 군중들이 벌이는 아수라장을 내려다보며 걷잡을 수 없는 고민에 휩싸였다. 작금의 상황은 실로 폭동이 일어나기 일보직전인,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유다 지방에서 폭동이 일어난다면, 이는 로마에게 있어서 매우 거슬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신교를 믿고 있는 자신들의 믿음을 거부하고, 끝까지 그들의 유일신을 섬기기를 고집하는, 다스리기 어려운 '독종'들 - 그것이 유다 민족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민족이 폭동을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신은 로마로 소환되어 실패의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말은 굉장히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고한 이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스스로의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다.


고민과 갈등에 휩싸인 빌라도는 결국 결단을 내린다. 예수님을 유다인들에게 넘겨주면서,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 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뒤이어 말했다. "이 자의 죽음에 나는 아무 책임이 없다. 십자가형을 원한 것은 내가 아닌 너희들이다." 군중들은 그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큰 소리로 답했다. "그 자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70 큰빛 979 2014-12-25
169 강경애마리아 879 2014-12-22
168 큰빛 1070 2014-12-20
167 나현석 1519 2014-12-12
166 나현석 1269 2014-12-12
165 강경애마리아 1455 2014-12-06
164 민영인 1100 2014-10-26
163 황철구 1021 2014-10-16
162 홍보부 943 2014-09-30
161 청년성서모임 907 2014-09-23
160 큰빛 1373 2014-09-23
159 강경애마리아 795 2014-09-14
158 손춘복 779 2014-09-09
157 큰빛 1248 2014-09-04
156 강경애마리아 1473 2014-08-18
155 강경애마리아 865 2014-08-13
게시물 검색

  • 천주교 마산교구 주교좌 양덕동 성당  (우)51317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옛2길 128
  • 전화 : 055-292-6561  팩스 055-292-8330  주임신부 : 055-292-6560  보좌신부 : 055-292-6568  수녀원 : 055-292-6562
  • Copyright ⓒ Yangduk Cathedral of the Masan Diocese.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