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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례 언덕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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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분과 댓글 0건 조회 372회 작성일 2020-10-06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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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례 언덕에는 오래된 발자국들이 박혀 있다. 천주님을 올곧게 따랐던 평산 신씨와 김해 김씨가 있는가 하면, 이들과 반목하거나 이해관계를 따지던 이웃 전주 이씨도 있다. 앞의 발자국 들은 언덕에 머물며 신앙을 키우거나 그곳에서 살며 깊이 새겨졌다. 전주 이씨 발자국들도 부지런히 언덕을 들락거렸지만,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거나 틈새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 모두가 함께 역사를 지었다.

막중한 임무
 지난 여름부터 나는 명례 성지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전에도 명례 성지에 관심을 가지긴 했다. 낙동강이 있는 그곳, 강물과 어우러지는 풍광 속에 놓인 소박한 목조 성당에 끌려 여러 번 순례했고, 후원금도 조금 내놓았다. 이제 명례의 묻혀 있는 역사를 파헤치고, 알아 가고, 정리하는 의무를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짊어지게 되었다. 막중한 임무가 큰 보따리로 안겨진 셈이다.
  그냥 순례자로 드나들던 때와는 달리, 어깨가 무거운 만큼 주인 정신이 절로 생겨났다. 평산 신씨나 김해 김씨처럼 충실한 마음이 생겼다. 여기 명례의 붙박이로 자리를 지키다 떠나신 이제민 신부님처럼, 그렇게 되었다. 그전에 명례 성지는 백 번 생각해도 이제민 신부님이 주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로 맡은 최문성 신부님더러 많은 사람이 복자 신석복과 같은 마르코이니 딱 제자리라 고들 하지만, 그분도 붙박이 주인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께서는 “난 아니'라고 손 놓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시는 것 같았다. 요나처럼 달아나는 사람도 불러 세우시는 하느님이시니, 멀리서 빙빙 돌던 나도 결국 여기 중심으로 들어서게 하셨다.
  이제 나는 '주인이라는 자세로 이곳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순교자 신석복 생가 터' 같은 표지석 하나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는다. 복자가 순교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야외 제대를 품은 생가 터의 잔디를 밟으며 그분의 발자국을 생각한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성모승천성당에서는 서까래 한가닥도 찬찬히 바라보며 귀하게 여긴다. 태풍에 성당이 완전히 내러앉았을 때, 그 옛날 교우들이 지극정성으로 흙을 털고 쓸 만한 자재를 찾아냈다고 한다. 닦고 닦아 쓰며 성당을 새로 지었다는 기록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유해가 모셔진 순교자 답 아래 부활 경당에서는 복자 신석복 마르코를 가까이하며, 나도 녹는 소금이 되고자 하는 마음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역사의 퍼즐 맞추기
  명례 언덕에서 태어나 살고, 낙동강을 건너다니며 소금 장사를 하고 복음을 전했던 평산 신씨 신석복 마르코 복자. 그 가족과 후손들의 이야기가 희미한 역사 속에서도 나타나 퍼즐처럼 맞춰진다. 멀리멀리 흩어진 사람들의 삶을 수소문하며 퍼즐의 빈자리로 소환한다. 워낙 조각이 자잘하고 셀 수 없어서,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맞춰지지 않은 부분 때문에 쩔쩔매고 있을 때, 때맞춰 나타난 사람의 훈수에 기쁨이 넘친다.
  옛 명례공소와 명례본당의 역사를 지켜 낸 주인공들은 김해 김씨이다. 초대 공소회장 김우연 바스티아노로 시작하여 아들 손자대를 이어 신앙과 성전을 지켜 낸 사람들이다. 김우연의 증손자인 마산교구 김순곤 비오 신부님의 존재는 명례 신앙 공동체의 깊이를 더한다.
  나는 6대째 명례 언덕 자락에 사는 김우연의 고손자 발타살을 만났다. 그는 선대의 신심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문중의 사람은 대부분 고향을 떠나거나 신앙마저 떠난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지켜 내고자 하는 신념으로 버텼다. 그가 정성스레 보관하다가 내민 낡은 자료 조각들을 보고 이야기 들으며 나는 감동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퍼즐 맞추기에 빠져들었다. 이 한 사람이 김해 김씨의 역사, 아니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가륵하게 잇고 있었다.
  전주 이씨 재실(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은 우뚝 솟아 언덕을 가린다. 재실이 성모 동산 축대와 바짝 인접해 있어. 순례자들이 뭔가 해를 미칠까 하여 문중에서는 실눈을 뜬다. 주차로 성가시게 한다고 수시로 이의를 제기한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저 집을 사야 되는데!” 함께 작업하는 이사벨라는 같이 명례에 가는 날이면 번번이 주차하기 전에 전주 이씨 재실을 탐낸다. 나도 웃음으로 맞장구쳤지만, 전주 이씨 또한 명례의 역사에서 뺄 수 없음을 안다. 그들은 우리가 드나들기 훨씬 전부터 강물을 끼고 살아온 명례의 토박이고 이웃이다.
  명례 성지로 가는 날은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다. 낙동강 수변 오토 캠핑장의 바람개비가 파르르 돌며 안내하는 길에 들어서면 내 마음이 불러댄다. 어서 언덕을 오르라고 한다. 나는 강물도 뒤로 하고 자전거 둑길도 옆으로 두고, 서둘러 마음을 따라 대전사가 날개를 펼치고 서 있는 듯한 팽나무 곁으로 올라간다. 마음을 불러 세워 함께 성모승천성당으로 들어가 잠시 눈을 감는다.

명례 언덕의 발자국
  순교자 성월이 다가오고, 1년이 넘도록 분주하게 움직인 우리의 퍼즐 맞추기는 곧 결실을 보게 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에 순교한 신석복 마르코가 2014년에 복자품에 올랐던 역사, 경남에서 첫 천주당으로 세워졌던 명례성당의 역사, 무엇보다도 묻혀 있던 언덕을 명례 성지로 새롭게 조성한 역사가 총정리되었다. 순교자 신석복을 찜하신 것처럼 나를 찜해 주신 하느님.
  평산신씨, 김해 김씨가 수놓았던 명례 언덕에 내 발자국도 부지런히 찍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순교자의 영성이 내 가슴에도많이 찌혀 남았기를 기도한다. +

황광지 가타리나, 수필가, 양덕동성당
경향잡지 (2020.09)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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